*이 포스팅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소개
2006년 10월 11일 처음 개봉된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는 기예르모 델 토로가 감독과 각본을 맡은 스페인 멕시코 미국 합작의 판타지 호러 영화로, 스페인 내전 후라는 혼란스러운 시대에서 벌어지는 잔혹한 현실과 그 안에서 오필리아라는 한 소녀가 겪는 환상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19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졌지만, 총 8300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기예르모 델 토로의 '대표 최고작'으로도 불리는 <판의 미로>는 긴장감 있는 연출과 판과 식인 괴물 페일 맨 등의 복잡하고 뛰어난 분장 미술 효과, 그래픽 효과, 배우진의 출중한 연기력으로 로튼 토마토에서 95%의 평점과 거의 모든 영화 플랫폼에서 높은 평점을 받았으며 비평가들의 '2006년 최고의 영화 10선'에 오르며 그 독특하고 어두운 빛을 뿜어내고 있는 영화입니다.
수상으로는 제6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분장상, 의상상, 외국어영화상, 제79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개 부문에서 노미네이트 되며 미술상, 촬영상, 분장상, 새턴상 최우수 국제 영화상, 휴고상 최우수 드라마틱 프레젠테이션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델 토로는 자신의 작품 <판의 미로>와 비슷한 시기를 배경으로 하며 비슷한 '불순종과 선택'을 주제로 한 <나니아 연대기>가 놀라운 유사점이 있다고 말한 바 있으며 그가 <판의 미로>의 속편 <3993>을 제작하려고 했으나, 다른 작품의 연출을 맡는 바람에 프로젝트를 취소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환상의 미궁에 빠진 소녀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판의 미로-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를 소개합니다.
감독/각본
기예르모 델 토로
음악
하비에르 나바레테
주연
오필리아, 모안나 공주 역 / 이바나 바케로 (무정부주의자의 아내, 새로운 딸, 또 다른 나, 내 자매, 블랙 프라이 데이!)
비달 대위 역 / 세르지 로페즈 (파크, 검은 빵, 꿈과 침묵, 상류사회, 완벽한 하루, 레 루아 뒤 몬드, 말도로르)
판, 페일 맨 역/ 더그 존스 (오퍼레이션 타코 게리, 노스페라투: 공포의 교향곡, 물의 모양, 위자: 악의 기원, 헬보이 2: 골든 아미)
메르세데스 역 / 마리벨 베르두 (리스트라타, 백설 공주, 임파워드, 슈퍼 로페즈, 더 플래시)
카르멘, 지하 왕국의 왕비 역 / 아리아드나 길 (조용한 하녀, 선인장 사이의 집, 한 번만, 물 위를 걷다, 에팔루사)
페레이로 의사 역 / 알렉스 앙굴로 (백 우즈, 캐주얼 데이, 위대한 바스케스, 히든 어웨이)
페드로 역 / 로저 카사마호르
세라노 역 / 세사르 비아
가르세스 역 / 마놀로 솔로 (눈을 감으세요, 야생화, 조세핀, 공식대회, 위대한 바스케스)
오필리아의 아버지, 지하 왕국의 왕 역 / 페데리코 루피
판의 목소리 역 / 파블로 아단
2. 이야기
1944년 스페인. 내전은 끝났지만, 숲으로 숨은 시민군은 파시스트 정권에 계속해서 저항했고 그들을 진압하기 위해 정부군이 곳곳에 배치됐다.
프롤로그
돌바닥에 피 묻은 손을 늘어뜨린 소녀가 코피를 흘리며 간신히 숨을 쉬며 쓰러져 있습니다. 그 시간이 되돌아갑니다.
-아주 먼 옛날, 거짓도 고통도 없는 지하 왕국이 있었다. 그곳에 인간 세상을 동경하는 공주가 살았고 푸른 하늘, 산들바람과 따스한 햇볕을 꿈꿨다. 그러던 어느 날 공주는 시중들을 따돌리고 지상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지상으로 나오자, 눈 부신 햇살에 눈이 멀고 모든 기억을 잃었다. 자신이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조차 잊어버린 채 추위와 질병의 고통 속에서 결국 죽음을 맞았다. 그러나 공주의 아버지인 왕은 다른 모습으로라도 언젠가는 공주가 돌아오리라 믿고 있었다. 왕은 죽는 날까지 공주를 기다릴 것이다. 세상이 끝난다 해도.-
요정
오필리아는 엄마 카르멘과 함께 군인의 차에 탄 채 앞으로 살게 될 산속 기지로 향합니다. 오필리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동화와 요정 이야기책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임신한 카르멘은 도중에 힘들어져 급히 차에서 내리고, 따라 내린 오필리아는 숲 근처에서 눈 모양이 새겨진 돌과 얼굴이 새겨졌으나 눈 부분이 떨어져 나간 석상을 발견합니다. 오필리아가 석상에 눈 모양 돌을 끼워 넣자, 석상의 뚫린 입에서 기다란 날벌레가 나옵니다. 오필리아가 신기하듯 날벌레를 보고 있을 때, 카르멘이 내려오라고 말합니다. "요정을 봤어요." "신발이 엉망이구나. 우리가 도착하면 대위님이 마중 나오실 거야. 네가 아빠라고 불러주면 좋겠구나." 두 사람은 다시 차에 타 숲길을 달렸고, 그 뒤를 날벌레가 따라 날아갑니다.
미로
비달 대위는 자신의 회중시계를 보며 차가 15분 늦게 도착한 것을 확인합니다. 그는 차에서 내린 카르멘의 배를 만지고 웃으며 그녀를 환영합니다. 대위는 의사 페레이로의 말대로 안정을 취하게 하기 위해 카르멘을 위한 휠체어를 준비했지만, 카르멘은 싫다고 말합니다. "그냥 내 체면을 봐서 앉아." 비달은 카르멘의 귀에 대고 말해 휠체어에 앉게 했습니다. 다음으로 차에서 내린 오필리아는 대위에게 머뭇머뭇 왼손을 내밉니다. 대위는 그 손을 꽉 잡으며 "악수는 오른손으로 하는 거란다."라고 말합니다. 대위는 여종 메르세데스에게 짐을 가져오라고 시키고, 메르세데스는 의기소침하게 서 있는 오필리아를 발견합니다.
잠시 후 오필리아는 아까의 날벌레를 발견하고 책과 모자를 떨어뜨린 채 날벌레를 잡으러 뛰어갑니다. 날벌레가 날아간 곳에는 석상에 있던 얼굴과 같은 얼굴이 새겨진 아치형 출입구가 있었습니다. 오필리아는 그 안으로 들어갑니다. 안에는 미로 같은 벽들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여긴 미로야. 방앗간이 있기도 더 오래전부터 이 돌들이 있었대." 메르세데스가 오필리아가 떨어뜨린 책을 건넵니다. "길 잃을 수 있으니 들어가진 말렴." 메르세데스는 대위님이 부른다는 군인의 말에 오필리아와 함께 미로를 나섭니다. "네 아빠가 부르시는구나." 메르세데스의 말에 오필리아는 대위가 아빠가 아니라고 부정하며 진짜 아빠는 봉제사로 전쟁 때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영원한 삶
작전 회의에서 비달 대위는 숲속에 숨어있는 반군을 소탕하기 위해 쫒아가는 건 무모하다고 말합니다. 반군은 이곳의 지형을 잘 알고 있었고 대위는 숲으로 통하는 모든 보급로를 끊어 반군들이 숲에서 내려오면 세 군데의 공격 거점을 만들어 그들을 포위할 생각이었습니다. 대위는 메르세데스에게 페레이로를 데려오도록 명령합니다.
페레이로는 진통을 줄이는 약을 물컵에 두방울 떨어뜨리고 복용법을 설명하며 이제 잠자려 하는 카르멘에게 건넵니다. 페레이로를 부르러 간 메르세데스는 카르멘의 방을 나온 페레이로에게 속삭입니다. "선생님의 도움이 필요해요. 그 사람 다리의 상처가 갈수록 심해져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이게 다예요. 미안합니다." 페레이로는 메르세데스에게 항생제 약 꾸러미 하나를 건넵니다. 떠나는 페레이로를 지켜보던 메르세데스가 고개를 돌리자, 방에서 나와 있던 오필리아와 눈이 마주쳐 놀랍니다. 오필리아는 문을 닫고 불을 끄고 엄마의 옆에 눕습니다. 바람 소리에 삐걱대는 소리가 들려와 오필리아는 조금 겁을 먹습니다. 카르멘은 내일 오필리아에게 줄 깜짝선물이 있다고 예고합니다.
자기가 있는데 왜 엄마가 재혼했는지 궁금해하는 오필리아에게 카르멘은 너도 크면 엄마를 이해하게 될 거라고 말합니다. 오필리아는 카르멘의 요청대로 배 속을 차는 동생을 얌전하게 하기 위해 옛날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옛날 옛적 슬픔에 잠긴 머나먼 나라에 검은 돌로 된 커다란 산이 있었어. 해가 지면 산꼭대기에는 영원한 삶을 약속한 마법의 장미꽃이 폈지. 하지만 아무도 가까이 갈 수 없었어. 그 장미 가시에는 독이 많았거든. 사람들은 고통과 죽음만 이야기하고 영원한 삶에 대한 약속은 잊고 살았지. 결국 장미는 누구에게도 영원한 삶을 주지 못하고 차가운 산꼭대기에서 모두에게 잊히고 사라졌어. 홀로, 영원히."
부자
페레이로는 회중시계를 손질하던 비달 대위에게 카르멘의 상태가 아주 좋지 않으며 배 속의 아이는 양호하나 이곳은 산모에게 위험하다고 말했지만, 대위는 "아들은 아버지가 있는 곳에서 태어나야 한다"며 고집합니다. 페레이로가 어떻게 아들이라고 확신하느냐고 묻자, 대위는 냉소하며 주제넘은 소리하지 말라고 답합니다.
대위는 8시경 북서쪽에서 반군의 움직임과 총성을 포착했다는 부하 세라노와 가르세스의 말을 듣고 수색해 잡아 온 용의자가 있는 곳으로 향합니다. 용의자는 한 부자였습니다. 아들은 아버지는 잘못이 없다고 말하고 아버지는 아픈 딸들을 위해 토끼사냥을 나온 거라고 설명합니다. 대위는 그들의 가방을 뒤졌고 '신도 국가도 주인도 없다'라고 쓰인 종이와 술을 발견합니다. 대위는 그 술병으로 자신들은 토끼 사냥만 했다는 아들의 코가 뭉개질 만큼 내려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대위를 보고 소리칩니다. "내 아들을 죽였어! 살인자!" 대위는 총으로 그 아버지를 쏴 죽이고, 바닥에 쓰러져있던 아들마저 쏴 죽입니다. 그런 후 가방에서 토끼 사체가 나오자, 대위는 세라노에게 말합니다. "보고하기 전에 제대로 수색해. 귀찮게 하지 말고." 잔뜩 긴장한 세라노는 답합니다. "네, 대위님."
판
엄마와 자고 있던 오필리아는 벌레의 날갯짓 소리에 잠에서 깹니다. 낮의 날벌레가 오필리아에게 다가갔습니다. 오필리아는 요정 그림이 있는 요정 이야기책을 보여주며 벌레에게 "넌 요정이니?"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벌레는 그림의 요정처럼 생김새를 바꿨고, 오필리아에게 따라오라며 손짓합니다. 요정은 아까의 미로로 오필리아를 안내했고, 오필리아는 요정을 따라 미로 중앙에 있는 계단을 내려갑니다. 계단의 밑에는 석상만 덩그러니 있고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무처럼 굳어있던 것이 요정에 의해 깨어나며 움직입니다. 그는 염소의 뿔과 다리를 가지고 있고 긴 손가락과 손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이군요! 돌아오셨네요!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그는 자기 가방에 갇혀있던 요정들을 풀어줍니다. 오필리아가 자신이 오필리아임을 밝히자, 그는 자신에겐 이름이 아주 많다고 말합니다. "산이고 숲이자 땅이지요. 전... 판이라고 합니다. 당신의 충실한 하인입니다, 주인님. 당신은 모안나 공주입니다. 지하 왕국 왕의 따님이죠." 자신은 재단사의 딸이라고 말하는 오필리아의 말을 무시하고 판은 오필리아가 인간이 아닌 달의 자손이라 말합니다. "왼쪽 어깨를 보세요. 그 증표를 찾으실 수 있을 겁니다. 왕께서 공주님이 다시 돌아올 수 있게 세상 곳곳의 문을 열어 놓으셨죠. 이것이 마지막 문입니다. 하지만 공주님의 본모습이 남아있고 인간으로 완전히 바뀌지 않았는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판은 보름달이 뜨기 전 세 가지 임무를 끝내야 돌아갈 수 있다고 설명하며 '선택의 책'을 꼭 혼자 보라며 오필리아에게 건넵니다. "공주님의 미래와 임무를 알려줄 겁니다." 판은 그 말을 남기고 어둠 속으로 사라집니다. 오필리아가 본 '선택의 책'에는 아무것도 적혀있지 않았습니다.
증표
날이 밝고, 비달 대위는 메르세데스에게 어제의 토끼로 스튜를 끓이라고 명령하고 커피가 쓰다며 그녀가 마셔보게 합니다. "앞으로는 신경 쓰도록 해." 메르세데스는 주방 시종들에게 대위가 커피를 마음에 안 들어 한다는 것과 곧 부인들이 오리라는 것을 알립니다. 주방 시종들은 그들을 욕하며 웃습니다. "까탈스러운 놈. 그자들은 돼지보다도 많이 먹던데. 말도 좀 많아. 물에 빠지면 입만 뜰걸."
다음으로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가 들어갈 목욕물을 준비합니다. 카르멘은 오필리아에게 아빠가 손님들을 초대했다는 것을 알리며 자신이 오필리아를 위해 만든 초록빛 드레스와 새 구두를 보여줍니다. 오필리아는 욕실로 들어가 '선택의 책'을 펼칩니다. 그러자 책에 잉크가 번지듯 그림과 글이 생겨났고, 그것은 나무 밑으로 들어가는 소녀처럼 보였습니다. 카르멘은 기대하며 오필리아에게 빨리 씻고 나와 드레스를 입어보자고 말합니다. "공주님 같을 거야." 오필리아는 자신의 왼쪽 어깨에서 초승달 모양의 문양을 발견합니다. "공주님이요?" 오필리아는 거울에 미소 짓습니다.
초록빛 드레스와 하얀 앞치마를 두른 오필리아는 주방으로 나옵니다.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의 모습에 흐뭇해하며 오필리아에게 꿀 탄 우유를 주기 위해 젖소의 젖을 짜러 갑니다. 따라 간 오필리아는 메르세데스에게 요정을 믿냐고 물으며 어젯밤 요정이 찾아왔으며 '판'을 만났다고 이야기합니다. 어른이 되어 이젠 요정을 믿지 않게 된 메르세데스는 자신의 어머니는 판을 조심하라고 하셨다고 답합니다.
두꺼비
비달 대위는 메르세데스를 물자창고로 불러 창고 열쇠를 달라고 합니다. 그는 앞으로 물자창고 열쇠는 자신이 보관할 예정이었습니다. 잠시 후, 멀리서 피어오르는 연기를 발견한 대위와 부대는 일제히 연기가 나는 곳으로 향합니다.
한편, 오필리아는 숲으로 향하며 '선택의 책'에 그려진 내용을 읽습니다.
"옛날 옛적, 이 숲은 처음엔 신비로운 생명체들의 집이었어요. 그들은 서로를 보살펴 주며 방앗간 근처 언덕에 있는 커다란 무화과나무 그늘에서 살았답니다. 하지만 나무는 병들고 가지는 모두 말라버렸고 줄기는 늙어 비틀어졌어요. 괴물 두꺼비가 뿌리에 살면서 나무를 못살게 굴었기 때문이죠. 두꺼비의 입속에 마법 돌 세 개를 넣어 두꺼비가 삼킨 황금 열쇠를 가져와야 해요. 그러면 나무가 다시 살아날 거예요."
커다란 무화과나무 밑에 다다른 오필리아의 엄마가 선물해 준 구두는 진흙으로 더러워졌습니다. 오필리아는 드레스와 앞치마를 벗어 나뭇가지에 걸어놓고 속치마 차림으로 나무 아래로 기어들어 갑니다. 밖에는 바람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나무 안에는 벌레가 많았고, 진흙투성이였습니다.
한편, 비달 대위는 불을 피운 자리에서 반군들이 금방 떠났다는 것을 알아챕니다. 또 그는 그 자리에서 항생제 병을 발견하고 근처에 그들이 있다고 생각해 숲을 향해 반군들을 도발하지만, 숲은 조용했고 부대는 그대로 철수합니다. 반군들은 철수하는 부대를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오필리아는 나무 속에 있던 거대한 두꺼비를 발견하고 두꺼비에게 말합니다. "아, 안녕, 나는 모안나 공주야. 난 네가 무섭지 않아. 곤충들을 잡아먹으며 이렇게 사는 거 부끄럽지 않니? 나무는 죽어가는데 혼자만 살찌고." 두꺼비는 오필리아의 얼굴에 붙은 벌레를, 혀를 이용해 잡아먹고는 커다란 트림을 합니다. 오필리아는 기지를 발휘해 두꺼비에게 벌레를 보여준 뒤, 마법의 돌을 쥔 손에 벌레를 쥐고는 두꺼비에게 내밉니다. 두꺼비는 역시 혀로 그것을 잡아먹었고, 마법의 돌을 삼킨 두꺼비는 자기 내장을 전부 토하고 껍데기만 남아 죽습니다. 오필리아는 그 안에서 빛나는 황금열쇠를 가지고 무화과 나무 안에서 나옵니다. 밖으로 나온 오필리아는 엄마가 만들어준 드레스가 나뭇가지에서 떨어져 흙투성이가 되어있는 것을 발견했고 잠시 후 비가 내립니다.
시계
저녁, 대위의 집에 손님들이 찾아왔습니다. 카르멘은 오필리아를 찾았지만, 오필리아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식탁에는 의사를 포함해 군인, 목사 등 대위의 주요 손님들이 앉았습니다. 대위는 그들에게 음식과 배급 카드를 한 집에 하나씩 나눠주며 자신의 계획을 말합니다. 하나로는 부족하지 않겠냐는 말에 대위는 하나로도 충분하다고 답합니다. "반군에게 식량이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섭니다. 놈들도 슬슬 지쳐갑니다. 부상자도 있고요." 부상자가 있는 건 어떻게 아냐는 페레이로의 말에 대위가 항생제 병을 보여줍니다. "신께서 영혼을 구해주셨으니, 육체야 어차피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목사와 손님들은 대위를 적극적으로 돕겠다며 지지합니다. 비달 대위는 손님들 앞에서 자신이 새로운 스페인에서 아들을 낳기 위해 자원한 이곳으로 왔다고 밝히며 만인이 평등하다는 몇몇 사람의 말은 잘못된 신념이며 현실은 다르다고 말합니다. "전쟁은 끝났고 우리는 승리했습니다. 새 질서를 위해 모두 죽여야 한다면 우린 당연히 그렇게 할 겁니다. 승리하기 위해 여기에 모였습니다." 대위가 잔을 들자, 손님들도 일제히 잔을 듭니다. "승리를 위하여!"
땔감을 가지러 나온 메르세데스는 불빛으로 숲 쪽에 신호를 보냅니다. 그리고 잠시 후, 온몸이 진흙으로 더러워진 오필리아를 발견합니다.
손님 중 부인들이 카르멘에게 대위와 어떻게 만나게 됐는지 물었고, 카르멘은 대위의 손에 자기 손을 얹으며 대위와 만났던 과거를 이야기합니다. 부인들이 진작에 만나놓고 한참 후에 짝이 된 것이 재밌다고 말하자, 대위는 카르멘에게서 손을 빼며 부인들에게 이런 자리에 익숙지 않은 아내를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그의 말에 상처받은 카르멘은 오필리아가 돌아왔다는 메르세데스의 말에 식사 자리를 뜹니다. 카르멘이 떠나고 식사 자리에 있던 군인 중 한 사람이 모로코에서 만난 대위의 선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부하들 얘기로는 전장에서 돌아가실 때 시계를 바위에 내리쳤다더군요. 자신이 죽은 시간을 아들에게 알리겠다고요. 나중에 아들이 자랑스러워하도록 말이죠." 하지만 대위는 아버지에게는 시계가 없었다고 말합니다.
아기
카르멘은 더러워진 드레스를 보며 가끔 너무 말을 듣지 않는 오필리아에 대해 속상해합니다. 대위님도 실망이 크실 거라는 카르멘의 말에 오필리아는 오히려 몰래 미소 짓습니다. 잠시 후 날벌레가 욕조 옆에 앉았고, 오필리아는 날벌레에게 열쇠를 얻었으니, 미로로 안내해 달라고 말합니다.
오필리아가 다시 간 미로 중앙의 계단 아래에는 여전히 석상이 놓여 있었는데, 그것은 판과 소녀와 아기를 새겨넣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요정이 손짓하자, 어둠 속에서 판이 고기를 씹어먹으며 걸어 나옵니다. 판은 석상을 보며 말합니다.
"서 있는 건 저고 그 앞의 소녀가 공주님입니다." "아기는 누구예요?" "열쇠를 구하셨군요. 잘하셨습니다." 판은 요정에게 고기 조각을 나눠주며 요정도 매우 기뻐하는 것 같다고 말합니다. "열쇠는 가지고 계세요. 조만간 필요할 겁니다. 이 분필도 챙기세요. 두 임무가 남았습니다. 보름달이 곧 올 겁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궁전 정원에서 한가롭게 산책할 날이 얼마 안 남았습니다." "당신을 어떻게 믿죠?" 오필리아의 물음에 판은 "저같이 미천한 것이 거짓말을 하겠습니까?"라며 되묻습니다. 오필리아는 계단을 올랐고 미로를 빠져나옵니다.
핏빛
날이 밝고, 군인들은 주민들의 카드를 검열하며 보급품을 나눠주기 시작합니다. 한 군인이 외쳤습니다. "스페인 총통 프랑코 님께서 주시는 양식이다. 사람들이 굶주린다는 건 반란군의 거짓말이다. 하나 된 스페인에서 춥고 배고픈 사람은 이제 없다."
바깥의 시끄러운 소리에 깬 오필리아는 통증에 신음하는 엄마를 둔 채 욕실로 가 '선택의 책'을 펼칩니다.
"어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게 보여줘." 그러자 책에는 빨간 잉크로 자궁 모양이 그려지더니 새빨간 핏빛 잉크가 종이를 온통 물들여버립니다. 오필리아는 놀라 책을 닫고 엄마에게로 갑니다. 카르멘은 일어나 하혈하며 오필리아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오필리아는 서둘러 뛰쳐나가 대위를 부릅니다.
"조용한 곳에서 휴식을 취하셔야 합니다. 무조건 안정이 필요합니다. 따님과도 따로 지내야 하고요." 페레이로는 출산 때까지 자신도 이 기지에 머물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대위는 말합니다. "꼭 살려야 하네. 필요한 건 뭐든 구해주지. 꼭 살리게."
밤, 낡은 방에서 지내게 된 오필리아가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을 본 메르세데스는 그녀에게 아기 낳는 것은 정말 힘든 일이며 좋아질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해 줍니다. "저는 아기 안 낳을래요."
오필리아는 메르세데스가 숲속 사람들을 도와주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아줌마에게 나쁜 일 생기는 게 싫어서 말하지 않았다며 메르세데스에게 기대며 자장가를 불러달라고 말합니다.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를 안고 자장가를 부릅니다.
재회
한밤중, 메르세데스는 몰래 주방 바닥에 숨겨 놓았던 보급품을 꺼냅니다. 그때 페레이로가 왔고, 두 사람은 함께 숲을 향합니다. 가는 도중에 페레이로는 이건 미친 짓이며 대위에게 들키면 우린 끝장이라고 말했지만, 그가 두렵냐는 메르세데스의 말에 페레이로는 내 목숨은 아깝지 않다고 답합니다. 잠시 후, 숲속에서 메르세데스의 동생 페드로가 나타나고 둘은 재회합니다.
한편, 외딴 방에서 자고 있던 오필리아에게 두 번째 임무를 하지 않았다는 것에 불만을 표하며 판이 나타납니다. 엄마가 아프다는 오필리아의 말에 그런 변명은 필요 없다고 답한 판은 오필리아에게 맨드레이크 뿌리를 주며 신선한 우유에 담아 어머니 침대 밑에 두고 매일 아침 피 두 방울을 떨어뜨리라고 말합니다. "이제 정말 시간이 없어요. 곧 보름달이 뜬다고요."
판은 요정들을 넣어놓던 가방을 오필리아에게 주며 이 친구가 안내할 것이며 매우 위험한 곳이니 조심하라고 충고합니다.
"거기에 잠들어 있는 놈은 인간이 아닙니다." 판은 오필리아에게 모래시계도 건넵니다. "진수성찬이 차려져 있겠지만 어느 것도 먹거나 마시면 안 됩니다. 절대로, 아무것도요. 목숨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메르세데스는 반군 기지로 들어가 훔쳐뒀던 보급품과 편지를 나눠주었고 페레이로는 반군 중 한명의 다친 다리를 확인합니다. 그러나 다리는 살릴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상태였고, 페레이로는 결국 다리를 자르기로 합니다.
금기
오필리아는 다시 '선택의 책'을 펼칩니다. 그러자 종이 위에 잉크가 번지며 글과 그림이 나타납니다.
"분필로 방 아무 데나 문을 그리세요. 그 문이 열리면 모래시계를 뒤집으세요. 요정이 당신을 안내할 거예요. 그곳에선 어느 것도 입에 대면 안 돼요. 마지막 모래가 떨어지기 전에 돌아오세요."
오필리아가 벽에 분필로 문을 그리자, 문 모양대로 벽에 금이 가며 벽이 열립니다. 그 안쪽에는 복도가 길게 이어져 있었습니다. 오필리아는 의자를 두고 요정 가방을 멘 채 모래시계를 뒤집은 뒤 복도를 내려갑니다. 복도 끝에는 진수성찬이 차려진 식탁에 눈이 없는 괴물이 앉아있었습니다. 그 괴물 앞에는 눈알이 두 개 놓여 있습니다. 천장에는 괴물이 아이들을 죽이는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한쪽에는 많은 아이들의 신발이 쌓여있습니다. 오필리아는 가방에서 요정들을 꺼냈고 요정들이 알려주는 자물쇠에 황금 열쇠를 넣었지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오필리아는 그 옆의 자물쇠에 열쇠를 꽂았고, 그 안에서 황금 단검을 꺼냅니다. 그런 후 식탁을 지나가던 오필리아는 포도를 보고 걸음을 멈춥니다. 요정이 그녀를 말렸지만, 오필리아는 요정을 쫒고 포도 한 알을 먹고 맙니다. 그때, 괴물의 손가락이 움직이며 자신의 앞에 있던 눈알을 손바닥에 끼워 넣고 눈알을 굴려 집안을 살핍니다. 요정들이 두 번째 포도알을 먹고 있던 오필리아를 말리고 오필리아 쪽으로 걸어오는 괴물을 방해했지만, 두 마리의 요정은 괴물에게 잡아먹히고 맙니다. 뒤를 돌아보고 놀란 오필리아는 복도를 달려 나오려고 했지만, 모래시계의 모래가 다 떨어짐에 따라 문이 닫히고 말았고, 오필리아는 괴물이 점점 다가오는 것을 보고 서둘러 천장에 분필로 문을 그려 가까스로 빠져나옵니다.
습격
날이 밝고, 페레이로는 곧 지원병이 올 것이며 50명 정도가 오면 비달과 붙어보겠다는 페드로에게 다음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습니다. 비달을 해치워도 또 다른 사람을 보낼 것이고 보급품은 바닥날 것이며 숨을 곳도 없어져 메르세데스까지 위험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메르세데스를 생각한다면 이곳을 떠나라는 페레이로의 말에 페드로는 싸우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고 답합니다. 페드로는 이제 가야 한다고 메르세데스에게 인사하고 메르세데스는 물자창고 열쇠를 페드로에게 건넵니다.
"놈이 벼르고 있으니까 지금 당장은 안 돼." 메르세데스는 살기 위해 비달 대위에게 붙어 그의 말대로 하는 자신이 겁쟁이라고 말하며 의사의 말대로 무모한 짓은 아닐지 걱정합니다. 페드로는 그녀의 걱정을 덜기 위해 적어도 대위의 계획을 방해할 순 있을 거라고 이야기합니다.
면도하던 대위는 깨진 회중시계의 초침이 가는 소리에 거울 속 자기 목에 면도칼을 갖다 대고 그어버립니다.
오필리아는 엄마의 방으로 가 판의 말대로 신선한 우유에 맨드레이크를 넣어서 그것을 가지고 엄마의 침대 밑으로 기어들어가 피 두방울을 떨어뜨렸습니다. 잠시 후, 페레이로가 와서 카르멘의 상태를 보았고 대위에게 이유는 모르겠으나 사모님의 열이 내렸다고 말합니다. 그에 비달 대위는 이렇게 말합니다. "명심하게. 둘 중 선택해야 한다면 아이가 우선이야. 우리 가문을 이어야 하니 아이를 구하게." 그때, 밖에서 폭발음이 들립니다. 밖으로 나간 대위는 숲 쪽에서 불기둥을 포착합니다.
오필리아는 침대 밑에서 나와 엄마의 배에 대고 말합니다. "아가야, 내 동생. 여기 세상은 별로 안 좋아. 하지만 너도 곧 세상으로 나올 거야. 너 때문에 엄마가 너무 아프셔. 밖으로 나올 때 내 소원 하나 들어줄래? 딱 하나만. 엄마를 아프게 하지 마. 예쁜 엄마 얼굴 너도 보고 싶지? 가끔 슬픈 표정도 짓지만 웃을 땐 정말 아름다워. 내 소원을 들어주면 약속할게. 널 우리 왕국으로 데려가 왕자로 만들어 줄게. 약속할게, 왕자님."
폭발한 곳으로 간 대위는 보급품을 실어 오던 기차가 폭발에 의해 탈선한 것을 발견합니다. 대위는 보급품을 훔쳐 갔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보급품은 그대로였습니다. 또다시 숲 쪽에서 폭발음이 들렸고, 그들이 기지로 돌아갔을 때는 빗속에서 반란군들이 습격하고 있었습니다. 대위는 기지의 물자창고 열쇠가 열려있는 것을 확인합니다. 부하 가르세스와 세라노가 대위에게 반란군들이 수류탄을 가지고 언덕 위로 올라갔으며 뒤처진 부대를 포위했다고 알립니다. 대위는 부대와 함께 언덕 위로 올라가 반란군들과 총격전을 벌입니다. 부대 중 몇 명은 사망했고, 살아남은 대위와 군인들은 살 가망이 없는 반란군들을 확인 사살하고 반란군 중 다리에 총을 맞아 살아있는 한 명을 창고로 데려옵니다.
실수
메르세데스는 살아있는 한 명을 창고로 데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놀라 창고로 달려갑니다. 대위에게 물건을 가지러 왔다고 말한 메스세데스는 대위에게 지금은 안 된다는 말을 들었지만, 잡혀 온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려 창고 앞을 서성입니다. 잡혀 온 사람은 페드로가 아닌 반군 중 한 명인 말더듬이였습니다.
주방에서 멍한 표정으로 감자를 썰던 메르세데스는 썰고 난 칼을 허리춤에 집어넣고 우유와 빵을 들고 페레이로가 있는 카르멘의 방에 갔습니다. 오필리아와 카드 게임을 하던 카르멘은 페레이로에게 이제 약을 안 먹어도 된다고 말합니다.
대위는 말더듬이에게 망치, 펜치, 송곳 등의 고문 도구를 보여주며 겁을 준 뒤 셋까지 말을 더듬지 않고 말하면 풀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하나... 둘... 세, 세..." "안됐군." 대위는 남자의 얼굴을 망치로 후려칩니다.
밤, 잠자고 있던 오필리아에게 판이 다시 찾아옵니다. 오필리아는 사고가 있었다며 요정 가방을 판에게 건넵니다. 요정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판은 분노합니다. "규칙을 어기다니! 실패한 겁니다!" 오필리아는 포도 두 알이라 아무도 모를 줄 알았고 실수했다고 답합니다. "이제 왕국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실수였다고요!" "돌아갈 수 없습니다! 3일 후면 보름달이 뜨는데! 공주님의 영혼은 영원히 지상에 남을 겁니다. 인간처럼 늙어가고 죽게 될 겁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억은 흐려지고 저희도 잊게 될 겁니다.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울먹이는 오필리아를 두고 판은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맙니다.
탄생과 죽음
새벽, 대위는 페레이로를 불러 말더듬이의 상처를 치료하게 합니다. 말더듬이는 페레이로에게 얼굴과 모든 손가락이 부러진 오른손의 부상으로 "조금이지만 말해버렸다"며 자신을 죽여달라고 요청합니다. 페레이로가 말더듬이에게 주사를 놓는 사이 대위는 페레이로의 진료 가방에서 전에 숲에서 발견한 것과 같은 항생제를 발견해 가져왔고 그 둘이 같은 병이라는 것을 깨달은 대위는 창고로 향하려 했지만, 위층에서 난 소리를 듣고 세라노에게 페레이로를 감시할 것을 명령합니다. 세라노가 창고로 갔을 때는 페레이로가 이미 남자를 죽게 한 후였습니다.
오필리아는 엄마의 방에서 떨어뜨린 쟁반을 다시 올려놓고 침대 밑으로 들어가 맨드레이크를 확인했지만, 맨드레이크는 왠지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카르멘의 방으로 들어간 대위는 침대 밑에 있던 오필리아의 발을 잡아 끌어내고 뭐 하는 거냐며 소리칩니다. 대위는 침대 밑에서 우유 속에 든 냄새 지독한 뿌리를 발견하고 그것을 꺼내 오필리아에게 이건 대체 뭐냐며 묻습니다. 대위가 뿌리를 잡아챘고 오필리아는 안된다고 소리칩니다. 그때 잠에서 깬 카르멘이 대위를 말렸고, 카르멘이 오필리아에게 이게 뭐냐고 묻자, 오필리아는 판이 준 마법의 뿌리라고 대답합니다. "애가 빌어먹을 동화책을 많이 읽더니 미쳐버렸군!" 카르멘이 대위에게 자신이 이야기하겠다고 말하자, 대위는 알아서 하라며 방을 나갑니다. 아빠 말을 들어야 한다는 카르멘의 말에 오필리아는 엄마의 품에 안기며 여기서 살기 싫다며 제발 떠나자고 말하지만, 카르멘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 세상은 동화 속 요정 이야기와는 달라. 잔인한 곳이야. 가슴 아프겠지만 너도 알게 될 거야." 카르멘은 뿌리를 벽난로 속으로 던져버립니다. "안 돼요!" "오필리아! 마법은 존재하지 않아! 그 누구에게도!" 벽난로 속의 맨드레이크가 비명을 질렀고, 카르멘은 진통으로 쓰러집니다. 오필리아는 누구라도 와주길 바라며 소리칩니다. "여기요! 도와주세요!"
창고로 간 대위는 페레이로에게 왜 자신을 배신했는지 묻습니다. "제 선택입니다." "나를 따르는 게 현명한 선택일 텐데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없군." "생각 없이 시키는대로 사는 건 당신 같은 족속이나 하는 거요." 대위는 그렇게 말하고 창고를 나선 페레이로의 등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쏩니다. 페레이로는 비 오는 차가운 땅 위에 쓰러집니다.
잠시 후 여종들이 급히 대위를 불렀고, 대위는 의무병을 불러 카르멘의 방으로 향합니다. 카르멘은 비명을 지르며 피를 쏟고 있었고 의무병과 여종들은 피를 닦을 천과 피가 묻은 천들을 가지고 급히 들락날락하고 있었습니다. 방 밖에는 비달 대위와 조금 떨어진 곳에 오필리아가 앉아있었고 잠시 후, 아기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습니다.
"주님께 이르는 길은 우리가 알 수 없고 그의 용서하심이 말씀으로 오시니 그 뜻을 따르는 것이 우리의 소명입니다. 이 땅은 속이 빈 껍데기만을 품었고 영혼은 주님의 영광 안에 있습니다. 삶의 의미와 은총을 찾는 과정이 힘들지라도 주님의 지혜를 찾는 길은 우리 손에 달려있기에 육신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 지혜와 해답이 나타날 것입니다."
카르멘의 장례식이 열렸고, 지난날 초대되었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를 추모했습니다. 메르세데스는 울먹이는 오필리아를 위로했습니다. 장례식 후 오필리아는 카르멘의 방에서 엄마의 유품과 약을 가지고 나옵니다.
반격
비달 대위는 고문을 통해 말더듬이에게서 정보원이 있다는 정보를 들었고, 의사를 잘 알던 메르세데스를 방으로 불러 술을 따라줍니다. "나를 어떻게 생각하나? 괴물이라고 생각하겠지?" 메르세데스는 "저 같은 사람의 생각은 의미가 없다"고 답했고, 창고에서 술을 한 병 더 가져오라는 대위의 말에 일어섭니다. "메르세데스, 뭐 잊은 거 없나?" 대위는 그녀에게 열쇠를 보여주며 "사실 찜찜한 게 있다"고 말합니다. 반란군이 수류탄과 폭발물을 퍼부으면서 창고를 털었는데 자물쇠를 부순 흔적이 없었던 것입니다.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도 있지만, 어쨌든 잘 보관하게." 대위는 그렇게 말하며 메르세데스를 보낸 뒤, 음악을 틉니다.
메르세데스는 주방 바닥에 숨겨 놓았던 편지와 물품을 담고 잠들었던 오필리아의 방으로 갑니다.
"오필리아! 난 오늘 밤에 떠나." "어디로요?" "말할 수 없어." "저도 데려가요." "그럴 수 없어. 나중에 꼭 데리러 올게." "데리고 가줘요." 오필리아는 메르세데스에게 필사적으로 안겼고, 결국 메르세데스는 비 오는 밤 오필리아를 데리고 기지를 나섭니다. 주변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지만 어두워서 보이지 않습니다. 메르세데스가 반대편으로 돌아섰을 때, 그곳에는 비달 대위와 군인들이 서 있었습니다.
오필리아는 대위에 의해 다시 낡은 방으로 끌려오고 맙니다. "언제부터 정체를 알고 있었지? 나를 속이다니 발칙한 것!" 대위는 오필리아를 잡은 채 뺨을 때린 뒤 부하에게 오필리아를 감시하도록 명령합니다. "누가 들어오려고 하면 얘부터 죽여." 혼자 남은 오필리아는 눈물을 흘립니다.
다음날, 메르세데스는 창고에 묶입니다. 그녀의 가방에서 육포, 담배, 편지가 나옵니다. "편지 쓴 놈들 다 잡아내. 내일까지 전부 내 앞에 끌고 와." 대위가 가르세르에게 명령한 뒤 가보라고 합니다. 괜찮겠느냐고 물은 가르세르는 겨우 여자 한 명인데 뭘 걱정하냐는 대위의 말에 창고를 나갑니다. "여자를 우습게 보는 그 생각 때문에 이런 일도 가능했지. 날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날 가지고 놀았군." 대위는 메르세데스에게 등을 돌려 고문 도구를 고르기 시작합니다. 그 사이 메르세데스는 허리춤에 숨겨놓았던 과도를 꺼내 손을 묶은 밧줄을 자르고, 대위의 어깨를 찌릅니다. 메르세데스는 고통을 느낀 대위가 돌아서자, 그의 가슴과 팔을 찌르고 그의 입에 과도를 넣습니다. "난 노인도 아니고 다친 포로도 아니야. 나쁜 자식, 오필리아는 건드리지 마. 건드리면 죽일 거야." 그녀는 과도로 대위의 입을 찢어버립니다. 창고를 나온 메르세데스를 본 가르세스는 그녀를 불렀지만, 메르세데스는 산 쪽으로 도망칩니다. 잠시 후 창고에서 나온 대위가 찢어진 입을 벌리며 부하들에게 소리칩니다. "저 계집애 당장 잡아 와!"
산으로 도망친 메르세데스는 금방 말을 탄 군인들에게 포위되고 맙니다. 세라노는 과도로 자기 목을 베려는 메르세데스가 대위에게 협조하거나 자기 손에 죽도록 그녀를 타이릅니다. 그때, 세라노가 누군가가 쏜 총에 여러 번 맞고 쓰러집니다. 이어서 놀란 말에 탄 군인들이 하나둘씩 총에 의해 사살됩니다. 잠시 후 조용해진 가운데 반군들이 내려왔고 페르도가 메르세데스를 껴안습니다. 메르세데스는 울음을 터뜨립니다.
순수한 피와 귀환
밤, 혼자 낡은 방에 갇혀있던 오필리아에게 요정이 찾아옵니다. 그리고 판이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냅니다. "공주님께 마지막 기회를 드리겠습니다." 오필리아는 판에게 안깁니다. "제 말을 따르겠다고 약속해 주세요. 제가 말하는 대로 할 수 있습니까? 진짜 마지막 기회입니다. 잘 들으십시오. 아기를 데리고 미로로 가십시오. 최대한 빨리 가야 합니다." "제 동생이요?" "그 아기가 필요합니다." "하지만..." "질문은 안 됩니다." "문이 잠겨있어요." "그러면 만들면 되지요." 판은 오필리아에게 분필을 건넵니다.
산에서 도망쳐 온 군인들이 기지로 돌아오고, 대위는 방에서 자신의 찢어진 입을 스스로 꿰매고 있었습니다. 오필리아는 분필을 이용해 문을 만들어 동생이 있는 대위의 방에 들어가 책상 뒤에 몸을 숨겼습니다. 대위는 책상 위에서 분필을 발견하고 그 분필을 부수고 총을 들었지만, 책상 뒤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잠시 후, 부하가 들어와 세라노가 당했다는 소식을 보고합니다. 대위가 방을 나가고 오필리아는 대위가 마시던 술잔에 의사가 카르멘에게 투여했던 안정제를 여러 방울 탑니다.
대위는 현장에서 도망쳐 온 부하들의 말을 듣습니다. 반란군은 50명 정도 되어 보였고, 현재 기지의 군인들은 20명에 불과했습니다.
오필리아는 아기침대에서 아기를 안아 듭니다. "우리 함께 떠나는 거야. 겁먹을 거 없어. 아무 일 없을 거야." 오필리아는 아기를 안고 나가려다가 대위의 목소리에 급히 자루들 뒤로 몸을 숨깁니다. 대위는 부하에게 병력 증원을 요청하고 숲 근처의 경계선을 사수하며 수색조가 돌아오면 바로 보고할 것을 명령합니다. 대위는 회중시계를 챙긴 뒤 술잔의 술을 들이켭니다. 아기를 안은 오필리아가 조용히 나가려 할 때 밖에서 폭발음이 들리며 환해졌고, 대위가 오필리아를 알아채고 맙니다.
"내려놔." 오필리아는 고개를 저으며 달려 나갔고 대위는 약기운에 휘청거리며 총을 들어 오필리아를 쫒습니다. 기지 밖에서는 반란군들과 군인들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대위는 오필리아가 달려간 산 쪽을 따라갑니다. 기지 안으로 들어와 오필리아를 찾던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가 없어진 것을 깨닫습니다.
미로의 안으로 계속 뛰어간 오필리아에게 나무들이 문을 열어주듯 갈라졌고, 오필리아는 금세 미로의 중앙에 다다릅니다. 손에 황금 단검을 든 판이 나와 오필리아에게 아기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보름달이 높이 떴습니다. 이제 문을 열 수 있어요." 오필리아는 판이 손에 든 단검을 경계합니다. "손에 있는 건 뭐죠?" 그러자 판은 순수한 피가 있어야 문을 열 수 있다며 한 방울이면 된다고 말합니다. "이게 마지막 임무입니다. 서두르세요." 오필리아가 머뭇거리자, 판이 소리칩니다. "제 말을 따르기로 약속했잖아요! 아기 이리 내요!" "싫어요! 동생을 지킬 거예요." "잘 알지도 못하는 아기 때문에 안 가시겠다고요?" "네, 안 갈래요." "아기를 지키느라 왕위를 포기한다고요? 공주님이 왜 그런 희생을 해야 합니까?" 판과 오필리아가 실랑이하고 있는 사이, 대위가 미로의 중앙을 찾아옵니다. "괜찮아요." 오필리아가 대답하고 그 뒤로 비달 대위를 본 판은 "그럼 뜻대로 하십시오."라 말하며 사라집니다. 대위는 오필리아에게 다가갔고 그녀에게서 아기를 빼앗으며 그녀에게 총을 쏩니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만진 오필리아는 그대로 돌바닥 위에 쓰러집니다.
아기를 안은 채 미로 밖으로 나온 대위는 이미 기지의 군인들을 죽이고 살아남은 반군들에게 둘러싸입니다. "내 아들이네." 대위는 메르세데스에게 아기를 건네고는 시계를 손에 쥡니다. "아들에게 아버지가 죽은 시간을 전해 주게. 하나 더..." "아니. 이 아이는 당신 이름도 모르고 자랄 거야." 페드로가 대위의 얼굴에 총을 쐈고, 대위는 쓰러집니다.
미로 중앙으로 간 메르세데스는 총을 맞고 쓰러져 있는 오필리아를 발견합니다. 오필리아가 늘어뜨린 손에 묻은 피가 계단 아래에 있는 석상에 떨어집니다. 메르세데스는 죽어가는 오필리아를 위해 자장가를 불러줍니다.
"일어나거라, 내 딸아. 이리 오렴." 오필리아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고, 어느새 지하 왕국의 왕과 왕비의 앞에 서 있었습니다. 오필리아는 붉은 드레스와 붉은 구두를 신고 있었고,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 쪽으로 걸어갔습니다. "아버지." "자신의 피를 흘려 희생했구나.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 왕과 왕비의 뒤에서 판과 요정들이 나타납니다. "지혜롭게 해내셨습니다, 공주님." 왕비가 오필리아에게 말합니다. "이쪽으로 오너라. 아버지 옆에 앉으렴. 얼마나 오래 기다렸는지 모른단다." 궁전에 있던 백성들이 오필리아를 향해 환영하듯 일제히 박수를 칩니다.
오필리아는 조금 웃으며 숨을 거두고 맙니다. 메르세데스가 그녀의 옆에서 흐느낍니다.
에필로그
시간이 흐르며 죽어가던 무화과나무에 꽃이 피었고, 그 옆에 날벌레가 날아와 앉았습니다.
-그렇게 공주는 지하 왕국으로 돌아갔고 정의와 온화함으로 평화롭게 왕국을 다스리니 온 백성이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가 지상에 남긴 작은 흔적들은 소중한 것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인다고 한다.-
3. 후기
캐릭터
◈ 오필리아
동화와 요정 이야기를 좋아하며 '믿는다'. 냉혹한 현실 속에 있지만 벌레를 요정이라 말하는 등 동화와 요정에 심취해 있으며 아이다운 미성숙한 모습으로 규칙을 어기기도 한다. 판으로 인해 자신이 지하 왕국의 공주이며 판이 제시하는 임무를 모두 완수해 지하 왕국으로 돌아가리라 믿지만, 왕자로 만들기 위해 데려온 동생에게 칼날을 대려 하는 판의 모습에 지하 왕국으로 가지 않겠다고 거부한 뒤 아기를 뺏으러 온 비달에 의해 사망하고 만다.
◈ 판
그리스 신화의 목신 '판'으로서 염소의 모습을 하고 있으나, 어둠 속에서 나타나고 사라지며 아기를 찌르려고 하는 등 음침해 보이는 탓에 흡사 '악마'의 모습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오필리아에게 주는 어려운 임무들로 나쁜 존재인지 좋은 존재인지 헷갈리는 부분도 있지만 결말에서 죽기 전 오필리아의 '환상'으로 보자면 좋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 비달
부대에서 높은 지위로서 적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쏴 죽이는 냉혈에 잔인함까지 겸비하고 있다. 그의 아버지도 군인이며 그의 아버지가 아들을 위해 시계를 부숴 자신이 사망한 시간을 알렸다고 하지만 비달은 부서진 회중시계를 가지고 있음에도 이를 부정하고 아버지를 겉으로 훌륭한 군인으로 인정하면서도 속으로는 미워하는 듯 하다. 대를 잇기 위해 죽어가는 카르멘보다 제 아들만을 지키려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며 결국 아들에게 자신의 사망 시각도 알리지 못하고 반군에 자신의 아들을 넘긴 뒤 사살당한다.
◈ 카르멘
"어른이 되면 알게 될 거야."라는 말을 비달 대위와 함께 살게 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아직 아이인 오필리아에게 자주 말하며 이해를 구한다. 그녀가 비달을 사랑하는 것만큼 비달에게 사랑받고 있지 않다. 남편이 죽은 전쟁을 피해서 오필리아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비달 대위와 함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동화나 마법을 믿고 그에 따른 행동을 저지르는 오필리아에게 "세상은 잔인하며 누구에게도 마법은 없다"고 소리친다. 대위의 아들을 임신한 후로 건강이 악화했고 아기를 출산하다가 사망하고 만다.
◈ 메르세데스
반군에 있는 남동생을 위해 홀로 비달 대위의 밑으로 들어가 보급품을 빼내어 반군들에게 나누어 주고 창고 열쇠를 몰래 주는 등의 도움을 준다. 남동생을 끔찍이 아끼며 걱정한다. 카르멘이 죽고 난 후에는 오필리아를 걱정하며 도와준다. 용기 있는 여성으로 배신자라고 밝혀졌음에도 기지를 발휘해 대위를 공격하고 기지에서 탈출하고, 군대에 포위되었음에도 복종하지 않는 강한 모습을 보인다. 끝내 시민군들과 함께 대위를 죽이고 아기를 보호하는 데 성공하지만, 오필리아는 구하지 못한다.
현실일까? 환상일까?
영화는 전체적으로 비달 대위와 반군의 어른들이 이끄는 스페인 내전 후 혼란스러운 현실의 시대와 그에 벗어나는 아이 오필리아가 이끄는 비현실적인 동화적 판타지를 번갈아 보여주며 전개됩니다.
초반에서 중반까지 오필리아에게만 보이는 판이라는 존재를 등장시킨 후로 공주로 돌아가기 위해 그녀가 해야 할 임무를 점점 힘들고 위험하게 만드는 동시에 현실에서도 엄마 카르멘의 죽음이라는 상황으로 그녀를 궁지로 몰아넣습니다. 또, 중반까지 비달 대위의 잔인한 만행을 계속해서 보여주며 시대의 암울함을 극대화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대위에 맞서는 반군들이 힘을 더해가도록 하여 비달 대위의 목도 점점 조여갑니다.
영화는 결말에 다다라 주인공 오필리아가 비달 대위에게 총을 맞아 쓰러지는 장면으로 관객에게 큰 충격을 안겼으며 악역인 비달 대위가 결국 반군에 의해 냉정히 살해되게 하여 관객의 응어리를 조금이나마 해소해 주었습니다.
영화는 특히 결말인 오필리아의 죽음에서 오필리아가 '환상'을 보는 것처럼 내비쳤는데, 이것으로 지하 세계가 진실이라고 생각해 온 관객은 오필리아의 앞에 나타나는 판타지의 모든 것이 전쟁으로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가 아프며 악당 같은 대위가 새 아버지라는 불안한 사실과 내전이라는 혼란스럽고 혹독한 현실을 부정하는 아이의 환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안타까움을 더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틈틈이 그저 환상이라면 말이 안 되는 장면들(맨드레이크로 카르멘이 낫는 장면, 감시당하는 방에서 분필 하나로 탈출할 수 있었던 오필리아)을 보여주었고 오필리아로 인해 되살아나 평화를 되찾은 무화과나무를 마지막에 보여줌으로써 지하 세계가 사실일 수도 있다는 점을 다시 시사하며 그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위로하는 듯한 여운으로 끝을 맺어 조금이나마 관객을 위로합니다.
다크 판타지와 교훈
현실은 가혹합니다. 사람은 혹독한 현실을 벗어나고자 비현실을 꿈꾸기도 합니다. 그런데 비현실이라고 해서 가혹하지 않을까요? <판의 미로>는 현실과 비현실에서 모두 공포에 가까운 어두움을 보여주며 관객이 결코 밝은 생각으로 도망치지 못하도록 압도합니다. 이것은 기예르모 델 토로의 기이하고 독특한 작품 성향 때문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제목으로만 보자면 보통의 판타지 영화와 같은 느낌으로 아이들도 함께 볼 수 있는 영화로 생각되지만, 사실 이 영화는 스페인 내전 후의 혼란스러운 시대라는 혹독한 현실을 바탕에 가혹한 판타지를 녹여낸 영화로 아이들이 보기에는 부적절하게도 너무 잔인하고 쓴맛이 강합니다. (영화 안에서 비달에게 죽어 나간 사람들과 주인공 소녀 오필리아의 어머니마저 죽는 장면, 오필리아가 새아버지 비달에게 살해당하는 결말만 보더라도 충분히 씁쓸합니다)
하지만 이 쓴맛을 가만히 음미해 보면 어두운 현실 속에서도 오필리아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비달 대위와 함께 살기로 한 카르멘, 공주로 되돌아가 동생을 왕자로 만들어 주기 위해 위험한 임무를 헤쳐 나가는 오필리아, 강한 군대에 맞서 자신의 임무를 끝까지 맡고 위험을 무릅쓰는 페레이로, 메르세데스, 페드로와 같은 반군의 모습, 하물며 악역인 비달 대위의 모습에서도 '가혹한 현실에 순종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나아가려는 사람의 의지'가 엿보이며, 영화 속 오필리아의 임무에서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를 아프게 하는 살찐 두꺼비와 진수성찬을 탐하면 쫒아오는 식인 괴물 페일 맨 등의 이야기 속에도 전쟁과 그 안에 내재한 탐욕을 경계하는 교훈이 녹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어두운 이야기와 비극적인 결말을 가진 예술 영화를 통해 쉽게 공포와 좌절, 슬픔, 안타까움의 감정을 느끼고 비극으로 끝내버릴 수 있지만, '현실 앞에서 무너짐'에 집중하는 것이 아닌, '현실과 투쟁한 인간의 모습'에 더 집중해 본다면 또 다른 관점이 보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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