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팅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소개
2024년 3월 27일 개봉한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 (Evil Does Not Exist)>는 자연으로 둘러싸인 공동체 마을 하라자와에 글램핑장을 만들고자 하는 연예기획사 사람들이 들어오면서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 영화입니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장편 영화로, 그가 감독, 각본, 기획, 편집 등을 맡았습니다. 2023년 9월 제80회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인 은사자상을, 2023년 10월 BFI 런던 영화제와 케랄라 국제영화제에서 최우수/최고의 영화상을, 2023년 11월 아시아 태평양 스크린 어워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습니다. 로튼 토마토에서 신선도 93%에 관객점수 86%를 기록하며 많은 리뷰 사이트와 비평가들 사이에서 평균 이상의 높은 평점을 받고 있습니다. 수수께끼 같은 모호함으로 이해가 어렵다는 평이 있지만 현대 문명과 자연 세계의 갈등 선에서 매혹적인 관점을 제공한다는 평입니다.
하마구치 감독은 처음에는 음악가 이시바시 에이코와의 작업으로 공연에 쓸 30분가량의 단편 영화를 만들려고 했으나 촬영과 제작이 길어져 대사가 있는 장편 영화를 만들기로 결정했고, 대사가 없는 단편 영화 <Gift>와 함께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다쿠미 역의 오미카 히토시는 배우가 아닌 중편 영화 감독이자 스텝이었고 배우 입장이 되어보고 싶어 하마구치 감독의 주인공 제안에 응해 영화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하마구치 감독은 소리와 이미지를 함께 다루는 장뤼크 고다르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지만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그의 작품과 지극히 다른 영화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한 편의 우화와도 같은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를 소개합니다.
감독
하마구치 류스케 (드라이브 마이 카, 우연과 상상, 스파이의 아내, 아사코, 해피 아워)
기획
하마구치 류스케, 이시바시 에이코 (Gift(퍼포먼스 라이브), 드라이브 마이 카, 알비노의 나무)
편집
하마구치 류스케, 야마자키 아즈사
주연
다쿠미 역/ 오미카 히토시 (일일시호일, 문라이트 섀도우, 우연과 상상) - 조감독 및 참여
하나 역/ 니시카와 료
다카하시 역/ 코사카 류지 (HIGH&LOW)
마유즈미 역/ 시부타니 아야카 (해피 아워, 3월의 5일간, 10년과 조금 +1일)
외
2. 이야기
새끼 사슴
숲속을 걸어가는 하나의 머리 위로 맑은 하늘과 나무들이 드리우며 영화는 시작합니다.
딸인 하나와 하라자와의 숲에서 살고 있는 다쿠미는 나무를 잘라 장작을 팬 후 우동 가게를 하는 이웃 카즈오에게 조달하기 위해 많은 통에 냇물을 긷습니다. 카즈오가 와서 물을 차에 싣는 것을 도울 때, 멀리 이웃 마을 구리하라에서 사냥꾼의 총성이 울립니다. 다쿠미는 그 후 하나를 데리러 학교에 가지만 하나는 이미 먼저 학교를 나와 숲으로 걸어간 뒤였습니다. 다쿠미는 하나를 따라갔고 숲속에서 하나를 찾아냅니다. 둘은 함께 나무 이름을 맞추고, 총에 맞아 움직이지 못하고 죽은 새끼 사슴의 뼈를 보고, 사슴들이 물을 마시는 물터를 보고, 선생님이 기뻐할 거라며 떨어진 꿩의 깃털을 주웠습니다.
그날 저녁, 다쿠미는 이웃 사람들과 만나 연예기획사에서 계획한 마을 글램핑 구축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하나가 꿩의 깃털을 스루가에게 주자, 그는 아들이 쳄발로를 연주할 때 쓴다고 기뻐하며 감사를 표합니다. 집으로 돌아온 다쿠미는 사진 속 아내 보며 피아노를 매만집니다.
글램핑
다쿠미를 포함한 이웃 주민들은 연예 기획사 플레이 모드에서 하라자와의 땅 일부를 글램핑 관광지로서 구축하기 위해 연 설명회에 참석합니다. 플레이 모드 측의 다카하시와 마유즈미가 글램핑과 정화조 구축 계획을 설명하지만 주민들의 대부분이 이에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정화조 설치 위치 문제, 기획사 측 전문가의 부재, 정화조 설치에 따른 수질오염, 글램핑에 따른 산불의 걱정, 24시간 감시 관리인의 부재, 설명회에서 계획의 주체인 사장의 부재 등이 대두되었습니다. 다쿠미는 사장을 불러 다시 설명회를 열자며 말했습니다. "이 땅은 전쟁 후 개척지로서 어떻게 보면 다들 외부인이야. 외부인을 받아들이며 자연을 파괴하기도 했어. 문제는 균형이야. 파괴의 정도가 지나치면 균형이 깨져."
설명회가 끝나고, 숲속에서 꿩의 깃털 여러 개를 주워 온 하나는 그것을 스루가에게 선물합니다. 스루가는 하나에게 고맙지만 숲을 혼자 다니면 위험하다고 말해줍니다.
기획사
플레이모드에서는 사장이 참석한 설명회를 다시 열어야 한다는 다카하시와 계획을 백지화해야 한다는 마유즈미의 의견을 묵살하고, 이미 산 땅과 코로나 보조금 때문에 그만둘 수 없다며 그대로 추진하기로 합니다. 그들은 24시간 감시 관리인으로 다쿠미가 적합하다며 마유즈미와 다카하시에게 술을 사 들고 그에게 부탁하러 가라고 지시합니다.
둘은 차 안에서 이 일이 맞는지, 어떻게 이 기획사를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관해 대화를 나눕니다. 다카하시는 마음이 다쳐 요양 보호사를 관두고 기획사에 들어와 예상대로 쓰레기 소굴이었다고 말하는 마유즈미에게 그만두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고, 관리하던 배우 타무라가 사고 난 후로 기획사로 들어온 다카하시 또한 기회가 좀처럼 오지 않는 것에 대해 불공평을 느끼고 왜 이런 일을 내가 해야 하냐며 불만을 토로합니다. 결혼 생각이 없다는 마유즈미와 달리 다카하시는 일을 관두고 중매앱으로 매칭된 사람과 시골에 내려가 이참에 관리인을 맡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자문가
다쿠미는 두 사람이 사 들고 간 술을 "술은 안 마신다"며 거절했습니다. 다쿠미의 장작 패는 일이 끝날 때까지 마유즈미와 나란히 기다리고 있던 다카하시는 다쿠미가 패던 장작을 스스로 패보기로 합니다. 다쿠미가 요령을 알려주자, 다카하시는 장작을 패는 데 성공합니다. "기분 좋다!"
두 사람은 다쿠미가 데려간 카즈오의 우동 가게에서 그에게 자문가로서 참여해 줄 순 없는지 묻습니다. 다카하시는 하라자와의 토지에 관해 배우고 주민들과 연결되어 글램핑 계획을 제대로 성공시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며 다쿠미에게 자기의 자문가가 되어줄 것을 머리 숙여 부탁합니다. 다쿠미는 글램핑 예정지가 사슴이 지나가는 길이라 사슴의 점프를 막을 3m의 울타리가 필요하다며 의문스러워합니다. "그런 곳에 사람들이 올까?"
사슴들
우동집에서 물이 부족하다고 하자, 다쿠미는 마유즈미와 다카하시와 함께 냇물을 길어 통에 담고 그것을 운반합니다. 다카하시가 마유즈미에게 먼저 돌아가라고 하지만, 마유즈미는 마지막 업무일 수도 있다며 남기를 자처합니다. 세 명이 잠시 쉬고 있을 때, 총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슴 사냥이라고 다쿠미가 설명합니다. 그는 두 사람을 태운 채 하나를 데리러 학교에 갔지만 하나는 또 혼자 숲으로 걸어간 뒤였고 그는 차를 몰아 숲으로 돌아옵니다.
사슴이 사람을 덮칠 수 있는지 묻는 두 사람에게 다쿠미는 사람에 익숙해진 사슴과 죽은 자식의 원수를 갚는 부모 사슴이 아니고서는 보통 겁이 많아 그럴 일은 없다고 단언합니다. 두 사람이 야생 사슴이 겁이 많다면 글램핑을 만들어도 접근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자, 다쿠미가 둘에게 묻습니다. "그럼 그땐 사슴들은 어디로 갈까?" 다카하시는 "어딘가 다른 곳으로."라고 대답합니다. 다쿠미는 담배를 뭅니다.
사슴의 피
세 사람은 새끼 사슴의 뼈를 지나쳐 하나를 찾아 숲을 따라 걸었습니다. 해가 지고 있었지만 세 사람은 하나를 찾지 못했고 오갈피나무 가시에 손을 다친 마유즈미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옵니다. 마유즈미의 손을 치료해 주고 사과를 한 후 둘을 집에 둔 채 혼자 하나를 찾으러 나온 다쿠미의 뒤를 다카하시가 같이 가겠다며 따라 나옵니다. 잠시 후, 마을에는 하나에 대한 실종 방송이 울려 퍼집니다. 해가 지고 방송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하나를 찾으러 다닙니다.
새벽, 다쿠미와 다카하시는 숲의 밖 들판에서 하나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천천히 모자를 벗으며 총상을 입은 새끼 사슴을 데리고 있는 부모 사슴 쪽으로 천천히 걸어가고 있습니다. 다쿠미는 그런 하나에게 다가가려는 다카하시를 제압하고 그가 움직이지 않을 때까지 목을 조릅니다. 그런 후 다쿠미는 쓰러져 있던 하나의 숨을 확인한 후 코피를 닦아주고 하나를 안아 든 채 숲으로 서둘러 걸어갑니다. 입에 거품을 물었던 다카하시는 일어나서 휘청대다가 다시 쓰러집니다. 하나를 안고 달려가는 다쿠미의 머리 위로 어두운 하늘과 나무들이 드리우며, 영화는 끝을 맺습니다.
3. 후기
완만한 전개, 놀라운 결말
영화의 초반부터 중반까지는 다쿠미와 하나의 일상, 글램핑장 설명회, 다카하시와 마유즈미의 대화 등을 각 등장인물의 특성을 살린 다소 완만한 전개로 보여줍니다. 하나를 따라 혼자 걷던 다쿠미가 풍경에 가려진 후 하나를 업은 다쿠미가 되는 장면, 하나를 찾는 다쿠미와 다카하시, 마유즈미를 죽은 새끼 사슴의 시점에서 올려다 보는 장면에서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카메라 연출이 돋보입니다.
후반에 들어서는 긴장감과 불안감이 조성됩니다. (다시 한번) 새끼 사슴의 시점에서 하나를 찾는 세 사람을 바라보는 모습, 하나를 찾는 다쿠미가 발견한 사슴 물터에 떨어진 검은 새의 깃털, 마유즈미의 피가 묻은 오갈피나무, 실종 방송, 해가 완전히 진 캄캄한 숲에서 하나를 찾아다니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점점 커지는 음악과 함께 긴장감, 불안감을 고조시킵니다.
결말에서는 비현실성과 놀라운 충격을 보여줍니다. 하나와 사슴이 마주 보는 연출은 현실과 꿈 사이를 오가는 듯하고, 다쿠미가 다카하시의 목을 조르는 모습에선 의외성과 복잡한 감정이 느껴집니다. 다쿠미가 쓰러진 하나에게 달려가는 장면에서 끝을 말하는 듯한 극적인 곡이 다시 연주되고, 처음 장면의 하나가 올려다보는 숲의 맑은 하늘과 대비되는 마지막 장면의 다쿠미가 올려다보는 숲의 어두운 하늘은 안타깝고 긴 여운을 느끼게 합니다.
마지막 장면의 의미
하나는 사냥꾼의 총에 맞아 사망에 가깝거나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이것은 '신성한 부모 사슴이 총에 맞은 새끼 사슴을 데리고 그의 앞에서 모자를 벗으며 다가오는 하나를 가만히 바라본다'라는, 비현실적인 장면이 존재하는 이유라고 생각됩니다.
이에 다쿠미는 그가 말했던 새끼 사슴을 잃은 아비 사슴이 새끼 사슴에게 다가가지 못하게 하고 그 원수를 갚듯이 다카하시를 살해합니다. 이것은 다카하시가 본인의 이득을 위해 자연과 사람에게 피해 끼치는 일을 멈추지 않으면서 본인이 피해받는 것은 싫어했던 것과 관련이 있어 보입니다. (글램핑장이 들어서면 "그때 사슴들은 어디로 갈까?"라고 묻는 다쿠미의 말에 다카하시는 "어딘가 다른 곳으로"라고 대답, 다쿠미가 담배를 물자 창문을 여는 다카하시)
다쿠미의 다카하시 살해 장면에서는 지나친 파괴가 깨뜨린 비균형적인 인간상이 비칩니다. 그럼에도 영화의 제목은 악의 존재를 부정하고 있고, 이 제한이 걸은 마법은 영화 안에서 악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교훈
영화 속의 현실 어디엔가 있을 법한 친근한 등장인물들은 이 이야기가 누구의 이야기도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또 영화는 사슴이라는 동물을 통해서 인간에게 목숨을 위협받는 모든 동물은 그런 인간에게 절대 상냥하지 않을 거라는 사실과 함께 인간의 과도한 파괴로 인해 인간 스스로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극이자 경고이자 교훈과도 같은 영화입니다.
'최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친절한 낯선 이들을 조심하라' 스픽 노 이블, 공포 스릴러, 미국 영화, 결말과 원작과의 차이점 (13) | 2024.11.08 |
---|---|
'권유받은 죽음에서 삶의 의미를 찾다' 플랜 75, 드라마 SF, 일본 프랑스 필리핀 합작 영화, 결말과 분석 (33) | 2024.11.01 |
'눈밭의 사회' 안데스 설원의 생존자들, 재난 드라마, 넷플릭스 스페인 영화-결말과 실화 이야기 (19) | 2024.10.19 |
'사람의 죄를 무엇으로 용서할 수 있는가' 디셈버, 법정 드라마, 일본 영화, 결말까지 (16) | 2024.10.12 |
'용감한 주부' 시민 덕희(Citizen of a Kind), 사회 고발 블랙 코미디, 한국 영화-결말까지 (35) | 2024.10.04 |